누가복음_10a장

 

추석을 앞두고 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추수는 종말을 의미한다. 여러 종말이 있다. 인생의 종말이 있다. 재판의 종결이 있다. 세상의 종말이 있다. 곡식의 추수가 있다. 예수님은 종말을 앞두고 추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종말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많은 결신자가 생겨났다. 그동안에는 죄악의 ‘확진자’가 많이 나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통하여 많은 결신자가 생겨난다. 세상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심판받았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추수할 일꾼을 찾으신다. 주인은 추수하는 중이다. 교회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부는 결신자를 추수하는 일을 멈추신 적이 없으시다. 예수님은 결실하게 하신다. 성령은 교회가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칠십 인을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 씩 한 조로 편성하여 보내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은 선교와 봉사의 파송처가 된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전해졌다. 그 때에 복음은 로마 제국의 변방이 되는 땅 끝까지 전해졌다. 제국은 망했지만, 교회는 종말에 꼭 필요한 일꾼이므로 남았다. 교회는 남은 이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추수하는 사역에 동참한다. 역학조사 하는 일꾼은 한 철 일꾼이다. 추수하는 일꾼을 종말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에 참여한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자는 회복의 은총을 입지 못한다. 두로와 시돈 같은 이방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에 받아들이겠지만, 이스라엘 동네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저버린다. 칠십 인은 이방인에게 발걸음을 돌려 복음을 전달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집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달한다. 그 집안에서 복음을 저버리기 전까지는 추수하는 일꾼은 거처를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 그 집안에 복음을 받아들일 믿음이 있을진대, 그 집안이 복음으로 복이 되기까지 함께 하면서 돕는 게 추수하는 일꾼의 사역 방식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협력하셨듯이, 추수하는 일꾼은 복음으로 회복되는 사람들마다 함께 협력하고자 한다. 협치가 아니라면 독재가 아니겠는가?

 

 

귀신들이 쫓겨나는 것은 기회일 뿐이다. 기회를 믿음으로 붙잡아야 한다. 내 이름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이름으로 남아야 한다. 내 이름이 교회의 성도로 남아야 한다. 내 이름이 천국에 남아야 한다. 파송 받은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집을 찾아다니면서 대면 접촉하였다. 이런 행동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손 씻기를 강조하였던 바리새파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언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강조했던가?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다(21절).

 

한 율법교사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 야심이 있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답을 그 율법교사에게 이끌어내시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하셨다. 오늘은 교회가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사랑할 때이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에 강탈당한 사람들의 처지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강도 만나 자의 이웃이 되어 주셨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먼저 주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경청하고 그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들었으므로 편 가르지 않게 되었다.